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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룬 사람들

방랑식객 자연요리전문가 셰프 산당 임지호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는 밥상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 밥상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옅으면서도 진하고 무미한 것 같으나

만 가지 맛이 있는 모유로 우리는 맛 여행을 시작합니다.

맛 여행의 여정은 참으로 변화무쌍하여, 쓰고 달고 맵고 짜고 시고 떫은 맛을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그 속에서 인생의 맛까지 간파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어미가 몸으로 준 맛이야말로 마음으로 준 맛이었음을 깨닫고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제 어미의 품 같은 밥상을 여기 차려봅니다.”

방랑식객 임지호의 따뜻한 밥상에 나온 말입니다.

 

산당 임지호. 여덟 살 때 첫 가출을 경험하고 열세 살 무렵부터 세상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남다른 가족사 때문에 전국 팔도를 돌며 유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상적인 것,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화시키는 것에 대해

큰 매력을 느낀 그가 중식집, 한식집, 요정, 분식집, 양식집 할 것 없이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하다가, 요리를 정식 직업으로 삼은 건 20대 중반

서울에 정착하면서부터였는데요. 결혼도 했지만 떠돌이 생활을 멈추지 못하고,

1980년대 중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으로 가서 근로자 2천여 명의

세 끼 밥을 책임졌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린호텔 한식당 주방장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늘 아래 온갖 재료를 다 활용해, 사람의 몸과 맘을 물처럼 맑게 해주는

음식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호텔을 박차고 나와 전국을 떠돌아다녔는데요.

1년에 네댓 달은 산속, 바닷가에 머물며 새로운 재료를 구했습니다.

처음 보는 풀을 맛보다 독이 퍼져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그 가운데 이제껏 제대로 된 요리상에 올라 본 적 없는 많은 생물들이

식재료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들풀, 야생화, 매미 껍질, 구더기, 닭똥에 생선 비늘까지.

식당의 주방장, 불교방송 요리 칼럼니스트, 프리랜서 요리 연구가 겸

코디네이터 등으로 일하다 1998년에야 양평에 산당을 내고 정착했습니다.

참고로 양평군과 청담동에 있었던 '호정'은 정리하고 현재는 강화도에 '산당'이라는 식당을 새로 오픈하여 그 곳 하나만을 운영중이라고 합니다.

 

가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첫째, 남의 물건은 티끌 하나도 탐내지 마라.

둘째, 남의 집에서 일할 때는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라.

셋째, 조상에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지 마라"라고 가르쳤고.

한의학을 공부한 아버지는 "자연의 모든 재료가 생명을 살리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라고 일러주었고, 이는 훗날 자연 요리 연구를 하게 된 바탕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네 누나와 함께 들에 나가 쑥을 캐며 자연의 재료가 음식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지요. 셋째 누나가 임지호를 특별히 아꼈고

누나는 "험한 욕을 하지 마라. 네 삶이 그렇게 된다.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항상 가까이 해라. 그러면 너도 그렇게 된다"라고 가르쳐

임지호가 숱한 시련 속에서도 세상을 저주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요리사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거리에서 만난 거지로부터 얻은 가르침 때문이었는데,

그 거지에게 "당신처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고 거지는

"기술이 한 가지 있다면 세상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평생의 그리움은, 자연 요리 연구가로서의

임지호를 크게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는데 전국을 방랑하며 만난 할머니들을

'어머니'로 섬기며 한국의 맛을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그는 40년 넘게 떠돌이 생활을 했고. 집을 떠나 온갖 막일을 하면서

그는 요리를 배웠는데요. 중국집은 물론 식당 주당이 모두 그의 실험실이었죠

배가 고파 풀을 뜯어 먹었고, 이름 모를 마을에 들어가 신세를 지며

어머니의 손맛을 배웠습니다. 그에게 요리는 세상 사람을 만나는 통로였고,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기는 진통제였습니다.

 

그런 그가 떠돌이란 이름을 떼고 식당을 연 것은 20여 년 전. 하지만 그의 식당엔

특별한 메뉴가 없습니다. 그날의 스페셜 요리는 언제나 기분과 재료에 따라 달라지지요.

마치 연주 때 마다 달라지는 재즈 선율처럼 그는 즉흥 요리를 즐겨 합니다.

그런 그를 주목한 건 외국인들이 먼저였습니다. 자연 요리 연구가로 해외에 알려지면서,

그는 유엔에 초청을 받아 요리를 선보였는가 하면, 외국 방송에 출연하여

한국 음식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게 재료가 되고,

세상의 모든 이가 그 밥상의 주인이 되는 그 행복한 날을 꿈꾸는

독 깨는 요리사 임지호, 그의 꿈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KBS 2TV 인기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세계에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린 공로로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2006년 말에는 미국 유명 요리 잡지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으며, ‘경기 으뜸이로 선정되는 등 경사가 겹쳤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 요리사로서 명실 공히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음식 만드는 일은 곧 수행이며 음식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수행자라고 말하는 그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작은 나무 열매 등

자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애정이 남들은 나쁘다, 좋지 않다하여

쓰지 못하는 자연의 재료들을 요리 안으로 선뜻 끌어들이게 한 것이 아닐까요.

음식 맛을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외국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새로운 그의 요리 세계, 익숙한 맛, 비슷한 맛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혀도 이제 그가 이끄는 끝없는 맛의 세계로 여행을 준비할 때입니다.